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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79년 10.26 대한민국의 심장을 쏘다.쭉이의 취미/영화 리뷰 2020. 3. 3. 15:10
<남산의 부장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하는 장면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며 사건의 40일전, 미국에서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며 파란을 일으킨다. 그를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나서고,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들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10.26' 이야기는 지금껏 무수히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다뤄져 왔기에 <남산의 부장들>은 어쩌면 매우 불리한 소재를 안고 진행하는 작품이다. 무수하게 다뤄진 소재를 재가공하는 만큼 특별하고 색다르게 진행되어야 하는 영화적 특성이 필요하기에 <남산의 부장들>은 기존에 다뤄진 사건의 시점을 이 영화만의 문법으로 다루는 데 집중한다.
영화의 초반부가 그러한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미국 워싱턴의 링컨 동상을 바라보는 전직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과 김규평의 대화와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장면에서부터 <남산의 부장들>은 영화적 특징을 드러낸다. 동상을 바라보며 "총 맞았는데 지금은 신이 되었잖아!"라는 박용각의 비아냥거리는 대사는 곧 발생할 '10.26' 사건에 대한 암시를 남기는 동시에 박정희와 링컨의 역사적 평가를 대비시키는 인상적인 순간을 완성한다.
화면은 링컨 동상이 마치 신이 되어 두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남산의 부장들>은 풍 원작이 취재에 의해 완성된 도서를 기반으로 두고 있다. 이처럼 원작이 취재로 완성된 글이 제3자의 시선에 머물러서 진행되었다면, 영화는 이 사건을 저지른 장본인 김규평의 심리와 시점에 초점을 맞추며 그가 왜 이 사건을 저질렀는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기존의 '10.26' 소재가 박정희의 최후라는 소재에서 시작했던 것과 달리 <남산의 부장들>은 그의 수하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다루고 있던 셈이다. 우리에게 이 사건은 권력에 충성한 두 사람의 질투가 빚어낸 비극으로 알려졌지만, 누군가의 시점에서 사건은 다르게 정의되기 마련이다. 김규평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가려진 여러 인물들의 시점을 살리게 되고, 이는 곧 암살사건에서 조명 받지 못했던 새로운 사건과 이야기를 조명하는 단계로 이어져 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요소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된다.
덕분에 함께 군사혁명에 가담했던 김규평의 시점은 물론이며 그와 경쟁한 곽상천의 대립을 비롯해 한때 친구였던 박용각과의 관계, 박정희의 독재가 만들어낸 미국과의 대립, 곽상천과의 서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정보전, 권력욕에 빠진 상관의 모습을 바라보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 김규평의 인간적 고뇌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실제 역사적인 이야기로 가보자 영화에 김규평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이다. 김재규는 최후의 진술에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고 얘기했다.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현재에도 계속 엇갈리고 있다. 대통령의 오른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아직도 당시 사건이 우발적이었는지에 대한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전인 1976년 10월 워싱턴 포스트에는 대대적인 기사가 실린다. 한국이 미국의 국회의원들과 공직자들에게 수십만 달러의 뇌물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것이 이른바 ‘코리아게이트’ 사건이다. 로비스트 박동선을 통해 진행된 이 공작은 1970년대 들어 매년 진행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새롭게 당선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강경한 대응과 대대적인 수사를 지시했다. 그로인해 한미관계는 악회 되었고, 주한미군 철수 같은 외교적 압박도 가해졌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인권유린에 대한 전말이 드러나게 되고 미국은 이를 강력히 비판했다. 1979년 한미 정상회담을 빌미로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주한민군 철수 문제 및 내정 간섭에 대해 강하게 토로하였고, 지미 카터는 매우 화가 났었다고 한다.
김형욱(남산의 부장들의 ‘박용각’부분)은 1963년부터 1969년까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중앙정보부의 악한 이미지는 대부분 김형욱 부장 시절에 생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 충신이었던 그는 하루아침에 중앙정보부 부장 자리에서 경질된다. 김형욱은 망명생활을 하다 ‘코리아게이트’ 사건이 터지자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박정희 정권의 음지를 양지로 끌어올렸다. 경질 이후로 쌓인 박정희 정권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시초다. 김형욱은 1977년 6월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 정권을 고발하기에 이른다. 이는 ‘코리아게이트’사건과 더불어 박정희 정권의 부패가 미국 정계에도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김형욱은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게 된다.
부마항쟁, 부산-마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항쟁이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지역에서 일어난 항쟁으로 박정희 정권에 몰락을 가져온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부마항쟁의 시초는 1972년 유신체제 선언 이후로 크고 작은 항생운동과 시민운동에서 시작된다. 무력으로 찍어 누르던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 들어오면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민운동, 학생운동에 대한 찬성여론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 10월 15일 부산대학교를 중심으로 항쟁은 시작되었다. 민주 선언문이 반포되었고 학생들은 일제히 집결하였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2,000여 명의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시위의 불길은 부산을 넘어 마산까지 번졌다.
시민들은 학생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 시위에 도움을 주는 한편,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마항쟁은 4.19혁명 이후 최초의 민주항쟁으로 유신정권의 몰락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사건의 진위 파악을 위해 부산을 방문한다. 부산 지역의 소요를 보고 온 김재규는 이 난국을 수습하지 못하면 서울도 위험에 처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강경보다는 회유와 대화로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 실장 차지철(남산의 부장들의 ‘곽상천’)의 생각은 달랐다.
차지철은 육사 출신이 아니다 보니 육사 출신에게 열등감을 느껴 경호실장이 된 이후로 정부 고위 관료들을 하대하고 무례하게 대했는데 김재규도 이에 포함됐다. 또한 직위를 이용한 월권 행사도 서슴지 않아 김재규와 차지철은 시시각각 날이 선 대화를 주고 받았다. 충성을 바쳤던 박정희 대통령마저 차지철 쪽으로 기울자 김재규는 점차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다. 10.26 사건이 우발적이었는지 계획적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차지철과의 대립과 박정희 대통령의 차지철에 대한 신임이 김재규의 심리에 어떤 변화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10.26사건은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가 맞물려 일어난 사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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