쭉이의 취미/미스터리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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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미스터리 영혼의 복수?- 바베이도스의 움직이는 관
18세기 영국의 귀족인 토머스 체이스(Thomas Chase)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1798년에 서인도 제도의 섬나라 바베이도스로 이주하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노예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했고 가혹하게 부렸다. 비단 노예에만 해당하지 않고 당시 남아있던 소수의 원주민에게도 동일하게 대해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본국으로부터 영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토머스 체이스는 어차피 고국에 못 갈거면 차라리 여기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이었는지 1807년 4월 10일 바베이도스 도심의 크라이스트처치 교구 교회에 자신과 가족들 전용 납골당을 만들었다. 물론 이 납골당에 대해서는 다른 설도 있는데, 월론드 가문이라는 다른 귀족 가문이 건설했었던 것이었다가 짓던 도중에 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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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노크 섬 마을 증발 사건 (베니싱 미스터리)
로어노크섬 마을 증발 사건 로어노크섬이란 영국의 탐험가 "월터 롤리" 라는 인물이 발견하였다. 월터롤리는 영국에서 신대륙 개척에 상당한 공헌을 세운 인물로 미국 버지니아주의 최초 발견자이기도 하다. 월터 롤리는 다양한 곳에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모험을 하던 도중 로어노크섬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곳에 식민지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식민지를 운영하기에는 매우 척박한 땅으로 개철 후에도 식량난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잦은 인디언들의 공격으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도중 월터 롤리의 동료인 존 화이트가 개척에 참여하게 되었다. 존 화이트는 로어노크의 관리자로 채용되어 가족들과 로어노크로 가게 된다. 그는 로어노크를 공격하는 인디언을 회유하여 친목을 도모하는 한편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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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헨지는 누구의 작품인가? (스톤 헨지에 대한 해석)
스톤 헨지는? 환상열석유적이라고 부르는 영국의 스톤헨지(고대 앵글로색슨어로 ‘공중에 매달린 바윗돌’이란 의미)는 그 특이한 구조 때문에 아틀란티스 후예들이 건설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돌을 위미하는 ‘스탄(stan)’과 돌쩌귀를 의미하는 ‘헹그(hencg)’라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유래한 말인 스톤헨지는 헨리 시대보다 수백 년 앞서 영국을 정복한 색슨족이 이름 붙인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는 높이 4미터, 무게 25~30톤의 거대한 돌을 원형으로 늘어놓은 거석유구다. 스톤헨지는 선사시대의 입석유적들 중에서도 아주 특이하다. 예컨대 돌기둥들의 윗부분에 가로로 놓인 거대한 상인방 돌들은 똑바로 잘라낸 단순한 평석이 아니라 돌 하나하나를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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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클 / 과연 누구의 메세지 인가?
기록상 맨처음으로 미스테리 서클이 보고된 지역은 1946년의 영국 남서부 지역이었다. 솔즈베리의 페퍼복스 힐(Pepperbox Hill)에서 두 개의 원형 무늬가 처음 목격되었다. 그리고 약 30년 후 1972년 워민스터에서 다시 발견된다.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글래스톤베리를 잇는 삼각지대 동쪽에 옛 색슨족의 수도였던 윈체스터(Winchester)가 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이곳 근처에서 미스테리 서클이 자주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 문양들은 대개 밀이나 옥수수밭에서 발견되며 귀리, 보리밭 등의 평지에서도 발견된다. 지역을 보면 영국, 네덜란드, 미국(최근에는 동부권에서도 발견됨), 호주 등에서 발견되는 등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런 크롭 서클이 생기는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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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셀레스트 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872 년 12 월 4 일 오후 3 시경, 포르투갈 앞바다 480km 근처를 항해하던 영국 선박 디그 라티아호는 수상한 범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 배의 이름은 메리 셀레스트 호. 이때 메리 셀레스트호는 단지 바다에 떠 있기만 한 상태였다. 디그 라티아호의 선장과 몇 명의 승무원들이 메리 셀레스트 호에 승선하지만 배에는 아무도 없었다. 브리그즈 선장과 7명의 선원, 브리그즈의 아내 사라와 2살 된 딸 소피아 마틸다 모두 없었다. 필수품을 챙긴 흔적이 없어 조난으로 보기 어려운 데다 금품이나 화물들은 약탈당한 흔적이 없었다. 해적의 소행으로 보기도 어렵다. 많은 추측과 가설들이 있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이상한 것은 식당의 테이블에는 먹다 남은 빵과 베이컨이 있고 커피는 아직 따뜻한 느낌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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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땅 엘도라도/ 그곳의 진실은?
16세기, 갓 발견된 신대륙을 향하여 많은 남자들이 바다를 건넜다. 그들을 흥분시킨 것은 황금으로 만든 집에 살며 온몸에 사금을 칠한 인간에 대한 전설이었다. 남자들의 욕망은 절정에 달해 대지에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황금향은 욕망의 깊이에 반비례하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황금향 전설의 발단 그 부족의 정식 명칭은 마노아라고 한다. 오리노코강 지류의 수원에 있는 거대한 호수 기슭에 도시가 세워져 있다. 그 도시 사람들은 건물에서부터 무기, 가구, 의복, 그리고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또한 지붕이나 도로에 깔린 돌 등 모든 것에 태양처럼 빛나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호수 기슭에 퇴적되는 무수한 사금을 써서 이러한 것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황금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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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과연 그들은 실존 할 것인가?
드래곤의 탄생 배경과 현재 원래는 원시 종교나 지모신 신앙에서 자연이나 불사의 상징으로 우러러 받들여지던 뱀이 신격화된 존재했거나, 공룡을 바탕으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 공룡과 드래곤을 자세히 보면 닮은꼴이 많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은 인간에게 정복되어야 할 존재’ 등의 사상의 발생이나 새로운 종교가 태어나 새로운 종교가 옛 종교의 신자를 포섭할 때 즈음하여 사악한 존재의 상징으로서 바뀌는 경우도 있다. 덧붙여 동굴 안에 보물 따위를 모으는 습성도 원인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신화에서의 드래곤 원어는 고대 그리스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 문헌에 이 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250년경 이후이다. 라틴어로는 draconem, 그리스어로는 δρακων로부터 파생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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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로 부터의 메세지? 나스카 라인 그것은 무엇일까?
ㄴ 나스카 라인에 대해 논하려면 먼저 나스카의 기후와 지형 특성을 알아야 한다. 나스카는 사막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연 강수량이 20mm도 채 되지 않고 바람마저 불지 않는 건조 기후이다. 더욱이 나스카의 사막은 일반적인 모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갈과 돌로 이루어진 돌사막이다. 이러한 환경이 수천 년 전에 그려진 나스카 라인을 현재까지 남아 있게 한 주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에서는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나스카 라인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평생 나스카 라인 연구에 매달려 온 마리아 레이체 박사는 말뚝에 줄을 매어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직선을 그리고 콤파스의 원리를 이용해 원과 곡선을 그렸다고 확신했으며 실제 말뚝을 박았던 흔적도 발견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왜 만들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