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김용민 '거리의 만찬' 하차 그는 누구인가?
    시사 2020. 2. 7. 10:51

     

    거리의 만찬에서 김용민이 하차한데 이어 김용민이 누군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이 끊이지 않는다. ‘거리의 만찬의 시즌 1MC를 맡았던 양희은은 지난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KBS1 '거리의만찬' 우리 여자 셋은 MC 자리에서 잘렸다. 그 후 좀 시끄럽다. 청원이 장난 아니다"라는 글을 게재했다. 실제로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거리의 만찬' MC를 바꾸지 말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이틀여만에 9천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공감을 했다.

     

    결국 김용민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양희은 선생께서 '거리의 만찬'에서 하차하신 과정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내가 이어받을 수 없는 법이다. '거리의 만찬'의 가치와 명성에 누가 될 수 없기에 어제 제작진께 사의를 표했습니다만, 오늘 여러분께 확정지어 알리게 됐다""앞으로 '거리의 만찬'으로 인해 세상이 더욱 밝고 아름답게 되기를 기도하겠다"는 글을 통해 자진하차했다.

     

    관련해 '거리의 만찬' 측은 "그동안 보내주신 따뜻한 응원과 격려 덕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거리의 만찬'1년 넘는 시간동안 시청자 여러분들을 찾아뵐 수 있었다. 하지만 시청률 경쟁을 비롯한 대내외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저희 프로그램에도 새로운 시도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이에 제작진은 오랜 고심 끝에 자체적인 개편안을 마련했다"고 신현준, 김용민을 새 MC로 섭외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럼 사회적 시사평론가인 김용민 그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김용민은 197472일에 강원도 춘천에서 가곡교회를 담임하던 장로교 목사 김태복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듬해 11월 아버지가 서울 마장동 홍익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서울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김용민의 동생 김용범은 Mnet PD로 재직 중이다. 훗날 김용민은 대학생 시절 자신을 보수성향 청년이었다고 회고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으며, 이회창이 낙선하자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회사 소속 언론인 시절(1998~2006)

     

    청소년 시절을 라디오 매니아로 지낸 김용민은 강남대학교 1학년 때부터 극동방송에서 리포터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김용민은 성수대교 관련한 일화를 소개했다.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당시 마침 김용민은 현장 근처에 있었고, 공중전화를 잡고 극동방송에 생중계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1년 전 19988, 25세에 PD로 입사하였다. 당시 김용민은 자비로 조선일보를 구독할 정도로 보수 성향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해고되면서 정치적 생각이 변했다.

     

    2003년에는 라디오21에 입사해 제작3팀장으로 활동했다. 라디오21 '스타바이러스'의 출연진이었던 변희재는 자신의 담당 PD였던 김용민을 "성실하고 예의바른 청년"으로 기억했다. 라디오21 시절 김용민은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김구라, 황봉알과 함께한 '날방개그'. 이 프로그램에서의 발언이 훗날 김용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김용민은 2005년까지 라디오21에서 일했다. 20051225일에는 뉴스앤조이 신임 편집장이 됐다.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에 의하면 김용민은 편집장이 되기 이전부터 간간히 뉴스앤조이에 글을 기고해온 사이였다.

     

     

    전업 시사평론가(2007~2010)

     

    김용민은 2007년경부터 전업 시사평론가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BS 시사자키 등의 방송을 진행하면서 기타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였고, 2007년에는 한양대학교 겸임 교수로 임용되었다. 한때 KBS에서만 4개 프로그램을 담당했지만, 2008년 이명박의 대통령 취임과 이병순 KBS 사장 취임과 맞물려 KBS의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2009년까지는 CBS 시사자키의 주말 방송에 출연했으나, 그 해 가을 개편에서 하차했다. 당시 김용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과 관련 시사자키 오프닝 멘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멘트를 했다. 김용민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시사자키 하차에 대해 "오래 하고 싶었는데 유감이다", "논쟁적 사안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교체를 결정한 것인가, 권력에 눈치가 보여 해임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한편, 20097월부터는 한겨레의 인터넷 방송 김어준의 뉴욕타임스에 출연해 시사되지, 시사장악퀴즈 등의 코너를 맡았다. 이를 계기로 사회자 김어준, 출연자 정봉주와 친분을 맺었다. 한편 2010년부터는 참여연대의 편집위원 자격으로 활동했으며, 여러 언론매체에 기고글을 보냈다.

     

     

    나는 꼼수다 PD와 출마(2011~2012)

     

    2011년부터 나는 꼼수다의 PD를 맡게 되었다. 간간이 정치인과 유명인의 성대모사를 보여주고, 기독교계의 부패를 지적하며 명성을 얻었다. 정봉주가 수감된 이후 정봉주의 강력한 요구로 제19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고 서울 노원구 갑에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의 이노근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낙선 이후 나는 꼼수다 PD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대안적인 교회 건설 프로젝트인 '벙커1교회'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설교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32월에는 서울 노원구 갑 지역위원장 사퇴함과 동시에 민주통합당에서 탈당하였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