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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땅 엘도라도/ 그곳의 진실은?쭉이의 취미/미스터리 분석 2020. 3. 2. 10:26
16세기, 갓 발견된 신대륙을 향하여 많은 남자들이 바다를 건넜다. 그들을 흥분시킨 것은 황금으로 만든 집에 살며 온몸에 사금을 칠한 인간에 대한 전설이었다. 남자들의 욕망은 절정에 달해 대지에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황금향은 욕망의 깊이에 반비례하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고 있다.
황금향 전설의 발단
그 부족의 정식 명칭은 마노아라고 한다. 오리노코강 지류의 수원에 있는 거대한 호수 기슭에 도시가 세워져 있다. 그 도시 사람들은 건물에서부터 무기, 가구, 의복, 그리고 장식품에 이르기까지, 또한 지붕이나 도로에 깔린 돌 등 모든 것에 태양처럼 빛나는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호수 기슭에 퇴적되는 무수한 사금을 써서 이러한 것들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황금이 그다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먹을 것이나 마실 것에조차 미치지 못하는 하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신앙에서는 황금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특별히 매년 한 번씩 치르는 중요한 의식에 황금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황금으로 만든 둥그런 집에 사는 '태양의 아들', 즉 부족의 왕은 호수 기슭에서 그 의식을 행한다. 그는 온몸에 기름을 바르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황금 가루를 바른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등장한다.
황금으로 만든 반지, 팔찌, 목걸이, 왕관으로 몸을 치장한 '태양의 아들'에게 사람들은 더 많은 황금과 보석을 헌납하기 때문에 그의 발치에는 황금과 보석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시종들을 거느린 그는 뿔피리와 북의 연주를 들으며 뗏목을 타고 호수를 지나간다. 뗏목에는 황금으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호수 중앙에 도착하면 그는 그 황금 헌납품들을 아무런 미련 없이 모두 호수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이것은 호수에 사는 악마에게 드리는 제물이다. 이렇게 해서 의식이 끝나고 왕은 사람들의 환희에 찬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호숫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도시를 찾는 자는 정중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과일 샐러드와 앵무새 스튜, 벌새 구이 등이 대표적인 요리다. 길가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황금이나 보석은 줍지 않는 편이 좋다. 주민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중에 잉카 제국을 정복한 피사로의 부관이었던 남자가 전했다는 체험담이다. 남자의 이름은 오레야나라고 한다. 그는 피사로의 지시로 부대를 이끌고 페루를 출발했지만 산속에서 부하들을 내팽개치고 단독 행동을 했다. 결국 그는 무사히 대서양 쪽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만 그 도중에 만난 것이 이 도시, 즉 '황금향'이었다. 엘도라도라는 명칭의 유래는 그가 말한 '황금의 사람' 또는 '황금왕'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가 이 땅의 부를 조국인 스페인으로 가지고 돌아간 것은 아니다. 귀로에 기아나 부근의 큰 강에서 용맹스러운 '아마존 여족'을 만나 습격을 받아 탈출할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물론 이 아마존족이라는 것은 그의 말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황금향' 외에도 막대한 양의 황금에 얽힌 수많은 소문들이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 나돌았다. 그 대부분은 원주민이 소문낸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화제에 스페인 사람들이 흥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잉카 제국의 정복
신대륙의 원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땅이 '발견'되어 드러나는 것 자체가 막대한 폐해였다. 원주민들은 쇠로 된 무기도 몰랐고 말도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극히 소수의 백인들 앞에서 그들은 굴욕적인 복종을 강요당했다.
백인들과 만났다는 것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죽음이 속출했다. 예를 들면 1492년에 콜럼버스가 에스파뇰라 섬에 왔을 때 섬 주민은 3백~4백 만 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겨우 30년이 지나는 동안에 주민의 수는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저항하는 사람은 죽음을 당했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강제노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백인은 전염병까지 섬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 결과 나타난 수치였다. 그야말로 가공할 만한 대학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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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각지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다반사였다. 여기서 악명 높은 한 스페인 사람을 통해서 그 실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 남자의 이름은 프란시스코 피사로이고 '황금 제국'으로 알려진 잉카의 정복자다. 잉카 제국의 영토는 지금의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에 걸쳐 있었다.
그런데 '돼지치기'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피사로는 가난하게 태어났으나 신대륙으로 가서 입신출세한 사람이다. 그는 헤르난 코르테스의 아스텍 왕국 정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길 것을 결심했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아스텍을 능가하는 황금 제국의 정복이었다.
1531년 1월, 그는 모집해둔 180명의 용병들과 서른일곱 마리의 말을 끌고 파나마를 출항하여 잉카 제국 북단의 도시인 툼베스(Tumbes: 페루 북서부)에 도착했다. 그러고는 페루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황제 아타우알파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황제는 피사로의 면회 요청을 받아들여 7천 명의 부대를 이끌고 회견장소로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스페인 신부가 십자가와 성서를 손에 쥐고 피사로의 숙사로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황제는 이를 거부했다.
"기독교도들이 빼앗아간 것들을 되찾을 때까지는 이곳에서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신부가 내밀었던 성서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포가 불을 뿜었고 숨어 있던 스페인 병사들이 잉카 군을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잉카군은 괴멸하였고 황제 자신은 돌로 된 방에 유폐되었다. 황제는 피사로와 석방을 위한 교섭을 했고 피사로도 이를 인정했다. 석방 조건은 황제가 있는 방을 가득 채울 정도의 황금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각지로부터 황금 신상이나 장식품, 의자, 방패, 술잔 등이 모여서 순식간에 방은 황금으로 가득 찼다. 그 중량은 순금 6.1톤, 순은 60톤이었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자에게 순박한 원주민을 속이는 일은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것처럼 손쉬운 일이었다.
피사로의 생각대로 사태는 진전되어 황제는 석방되지 못하고 처형되었다. 처형 전에 피사로는 황제를 개종시켜 프란시스코라는 세례명을 주었다고 한다. 그 후 피사로는 페루 제독의 칭호를 가지고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제압하여 더욱 많은 금은을 입수한 다음 새롭게 리마를 수도로 제정했다.
욕망에는 끝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신대륙에 유포된 황금 전설이 보다 막대한 것이었던가? 상당한 양의 금과 은을 손에 넣은 스페인 사람들은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황금 찾기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결국은 동료들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암살당한 피사로였지만, 그가 남다른 욕망을 에너지로 하여 끝없이 찾아다녔던 저 환상의 '황금향'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황금향' 전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잇달아 극적인 영향을 주었고 위정자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페루 제독이었던 루이스 우르타드 데 멘도사(는 페루의 무정부상태를 이 전설로 완화시켰다. 당시 페루에는 많은 낭인들이 모여 있었고, 거기에다 원주민의 반란이 일어나는 등 혼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속에서 멘도사는 '엘도라도 탐색대'를 조직하고 격려했다. 1560년의 일이었다.
물론 실제로 황금향을 발견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개의 탐색대는 많은 대원들을 잃었고 채워진 것은 피로와 실망감뿐이었다. 그들의 탐색은 조국 스페인 왕실의 영토를 확대시켰을 뿐이었다.
계속 퍼져나가는 전설
이렇게 해서 '황금향' 발견의 모험은 모두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황금향' 전설은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널리 퍼졌고 다시 새로운 황금 전설도 생겨났다.
예를 들면 잉카 황제의 귀족들이 제국의 붕괴를 미리 알아차리고 막대한 금은보화를 어딘가 산속에 숨겨놓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것은 피사로 일행이 쿠스코로 침입하기 직전에 잉카 귀족들이 다수의 하역 인부를 시켜서 보물을 어느 계곡에 묻고, 인부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인 다음에 자신들도 자살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소문이 유포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스페인 사람들이 쿠스코를 제압했을 때 제국의 수도에 당연히 있어야 할 황금상이나 신전을 치장하고 있었다는 황금의 태양 등 변변한 보물들 모두가 사라지고 없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소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정복자 피사로 자신이 보물을 어딘가에 감췄다는 설도 있었다. 이런 소문은 당사자가 부정하면 할수록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었다.
더구나 실제로 보물을 찾아냈다는 등 황금에 관련된 기묘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피사로의 동생인 곤잘로는 제8대 황제의 묘를 발견하여 대량의 황금병을 손에 넣었다.
어느 장교는 잉카 귀족의 궁전을 차지하고 그 중 한 방을 마구간으로 쓰고 있었다. 어느 날 마구간에서 말을 타고 있었는데 말발굽이 푹 하고 땅속으로 꺼져버렸다. 조사해보니 지하실이 나타났고 사금이 가득 들어 있는 아홉 개의 단지와 다량의 금은 용기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어느 병사는 전리품으로 받은 것을 전부 도박으로 잃어버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인디오가 그에게 속삭였다.
"나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어떤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을 빌려준다면 묻혀 있는 보물을 파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당신에게는 보물의 반을 주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병사가 승낙하고 일주일이 지난 다음 인디오는 약속대로 황금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황금향에 발을 들여놓은 남자
현재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해서 추측해보면 많은 탐험들 중에서 황금향에 가장 가깝게 간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곤잘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라고 한다. 그라나다 출신인 그는 피사로가 취득한 잉카의 황금이 세비야의 도시에 들어온 지 2년 후에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1536년 2월, 620명의 보병과 85기의 기병, 그리고 인디오 하역 인부 2백 명, 합계 9백 명의 대부대로 산타마르타를 출발해서 마그달레나 강을 남하하여 보고타 고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소금의 산 이 있다는 원주민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만을 믿고 떠난 여행이었다. 소금은 원주민에게 귀중한 물건이었고, 소금과 황금은 서로 교환되었다. 즉 '소금이 있는 곳에 황금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1년 후,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일행은 겨우 166명으로 줄어 있었다. 가슴까지 흙탕물이 차오르는 곳에서 행군하며 큰 뱀이나 악어, 나아가서는 인디오의 공격, 기아, 말라리아 등의 공격을 받은 결과였다. 어찌 되었든 케사다 일행은 현재의 보고타 부근에 도착했다. 이 근방은 치브차족의 지배 지역이었다. 당시 그들의 인구는 대략 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케사다의 군인들은 약탈을 계속하면서 북상했다. 황금과 함께 원주민이 '녹색의 작은 돌'이라고 부르는 에메랄드가 대원들을 흥분에 들뜨게 했다.
치브차족의 대추장은 에메랄드를 박은 황금 가마에 올라타고 전장에 등장했다. 입술, 코, 귀, 허벅지 등 온몸에 황금 장식품이 번쩍이고 있었다. 부적으로 꺼내온 전 대추장의 미라 또한 전신이 눈부실 정도로 많은 황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눈구멍과 배꼽에는 달걀 크기의 에메랄드가 박혀 있었다. 그들의 깃발까지도 황금 판을 얇게 펴서 만든 것이었다.
전투는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났다. 전쟁에 노련한 스페인 사람들 앞에서 치브차족의 공격은 아이들 싸움처럼 보였다. 전승자들은 정신없이 황금약탈을 자행했다. 그들은 전리품을 도시 한 귀퉁이에 쌓아 올렸다.. 방대한 양의 황금과 에메랄드가 산더미처럼 쌓여서 말에 올라탄 케사다 대장의 모습까지 감출 정도였다고 한다.
케사다는 이렇게 많은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공략해온 도시들은 모두가 흙으로 만든 건물이 늘어서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케사다가 전해 들은'황금향'에서는 도로와 건물들까지 모두가 황금으로 빛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케사다에게는 '황금향'의 발견이야말로 최대의 관심사였지, 황금이나 에메랄드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황금향' 전설에 마음을 빼앗긴 인간의 집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체포한 원주민들을 철저하게 신문하여 진짜 황금향의 소재지를 찾으려 했다.
어느 원주민의 말이 관심을 끌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2, 3일 정도 걸리는 곳에 구아타비타라는 이름의 호수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황금의 사람' 의식을 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구아타비타 호수는 해발 2,700미터의 사화산 화구에 생긴 호수였다. 그러나 케사다 일행이 찾아갔을 때 그곳에는 몇 채의 작은 오두막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호수에 얽힌 전설이 그들의 흥미를 끌었다.
어느 때인가 한 추장이 아내의 애인을 발견해서 죽여버렸다. 그리고 아내에게 애인의 시신을 억지로 먹게 했다. 아내는 이 잔혹한 행위 때문에 미쳐서 딸을 안은 채 구아타비타 호수에 몸을 던져버렸다. 그 이래로 아내와 딸은 호수 밑바닥에 사는 큰 뱀과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죽음을 슬퍼한 추장은 해마다 한 번씩 호수의 영을 위로하기 위해 제물을 던져 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송진을 온몸에 바르고 금가루가 뿌려진 바닥 위를 뒹군다. 그러면 그의 모습은 황금의 동상보다도 아름답게 빛났다고 한다. 그는 호수 한가운데까지 금박이 입혀진 뗏목을 타고 나아가서 제물을 던져 넣은 다음 호수에 뛰어들었다. 추장이 마치 황금의 물고기처럼 수면으로 떠오르면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기뻐했다고 한다. 호수에 사는 신비한 여성의 가호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치브차족에게 호수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이 구아타비타 호수는 많은 인디오들의 신앙 중심지로서 해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이 호수를 찾아와서 제물로 황금이나 에메랄드 물건들을 물속에 던지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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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호수 밑바닥에는 황금이나 에메랄드 같은 제물이 쌓여 있어서 수중 황금 도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스페인 사람들을 충동질했다. 케사다 자신은 실행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의 조카인 에르난 데 케사다는 인해 전술로 호수의 물을 전부 퍼내는 엄청난 일에 착수했다. 실제로 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인디오였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물이 없어진 호수 밑바닥에서는 작은 황금상이 몇 개 출토되었을 뿐이었다. 호수 밑바닥은 부드러운 진흙이 퇴적되어 마치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았다. 황금처럼 무거운 물건은 진흙 깊숙이 가라앉아버렸을 것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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