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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 '울지마 톤즈' 사랑을 실천한 신부시사 2019. 12. 24. 09:19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이 신부는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의 길을 택해 남수단 오지 톤즈에서 사제이자 의사, 교사로 살다가 대장암 투병 끝에 2010년 선종했다
12월9일 '남수단 슈바이처'로 불렸던 고인이 되신 이태석 신부 10주기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생전 고인과 깊은 친분을 나눴던 사제들이 참석해 이 신부와 얽힌 소중한 기억들을 풀어놨다. 고인보다 1년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상윤 베드로 신부는 이날 영등포구 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 한국교구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이태석 신부가 맨 처음부터 남수단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형은 부제에서 사제가 되기 전에 본국에 들어오는 한 달간 한국에 오지 않고서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하러 갔다"며 "케냐 관구에 선교하러 온 신부가 있다고 하니 당시 수단의 톤즈에서 케냐로 직접 와 이태석 신부를 데려갔다. 그래서 형이 그냥 톤즈로 따라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베드로 신부에 따르면 고인은 당시 수단 톤즈에 다녀온 뒤로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이 신부 본인이 겪었던 가난이 최악의 가난으로 생각해왔는데 막상 톤즈에서 목격한 가난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겨낼 수 없는 가난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신부는 그렇게 톤즈를 다녀온 뒤로 가장 가난한 그곳을 첫 선교지역으로 선택하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인제대 의과대학을 나와 미래가 보장됐던 이 신부가 굳이 사제의 길을 선택한 이유도 설명했다. 김 베드로 신부는'이태석 신부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을 때 '돌이 있는데 다이아몬드가 보이면 돌을 버려야 하지 않나'라고 답한 적이 있다'면서 '의사를 돌이라고 보며 성직자가 됐다. 그는 신부가 되려 한다기보다는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자가 되고자 했다'고 떠올렸다.
생전 이 신부는 청소년들을 참 좋아했고, 그들과 함께 운동하고, 음악을 하며 보냈던 시간을 가장 즐거워했다고 사제들은 전했다. 살레시오회 부관구장인 백광현 마르첼로 신부는 "이태석 신부가 운동을 좋아하고 체격이 건장했다"면서 "아이들하고 항상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화를 소개한다면 어느 날 내게 사진을 보여줬는데 광대 옷을 입고서 아이들하고 어울리는 것이더라"며 "이게 이태석 신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이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려고 했다"고 회고했다 .
톤즈에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꾸린 '브라스 밴드'에 관한 미담도 소개됐다. 김 베드로 신부는 고인의 부탁을 받아 한국에서 톤즈로 악보를 보낸 지 일주일 만에 악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브라스 밴드가 합주에 성공했다고 알려왔다며 "당시 첫 번째로 합주한 곡이 '사랑해 당신을'이었다"며 노래 구절을 흥얼거렸다. 그는 "이 신부는 브라스 밴드를 두고 '이들의 피에는 악보가 흐른다'고 말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태석위원회 위원장 유명일 사무엘 신부는 "그가 떠난 지 10년이 됐다. 이제는 이 신부의 사랑과 영성을 이 세상에 더 많이, 더 길게 알리고 싶다"고 바랐다.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나눠주던 고 이태석 신부는 신부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은 것을 깨닫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많은 분이다. 이태석 신부를 따라 오지에 가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닌 마음이 어려운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것 그것조차도 사랑이다. 돌아오는 2020년 새해를 맞아 다시한번 생각 할 것이 많게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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